소유 경쟁에 들이댄 화두 ‘무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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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읽기 /
〈무소유〉
법정 지음/범우사·8000원
교보문고가 집계한 4월 셋째 주(14~20일) 책 판매 종합순위를 보니 1위가 <무소유>(범우사), 2위 <오두막 편지(개정판)>(이레), 4위 <아름다운 마무리>(문학의숲), 5위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조화로운삶), 13위 <홀로사는 즐거움>(샘터), 해서 상위 20종 중 11종이 법정 스님 책이다. 50위까지엔 21종이 그렇다. 에세이류만 따로 집계한 표에는 상위 20위 중 단 한 책만 빼고 모두 법정 스님 책들이다.
서점가 베스트셀러 윗 순위를 법정 스님 책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이런 추세는 지난달 11일 스님이 입적한 이래 거의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순위변동도 법정 스님 책들간의 엎치락 뒤치락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예컨대 교보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최근 2주간 1위는 <무소유>지만 그 전 몇 주는 <아름다운 마무리>가 내리 1위 자리를 차지했다. 한국출판인회의 집계(4월 16~22일)에서도 <아름다운 마무리>가 1위, <무소유>가 2위다. 상위 20위까지 법정 스님 책 7종이 포함돼 있다.
김영석 범우사 실장에 따르면, <무소유>는 스님 입적 이후 약 40일 동안에만 5만부(문고본 포함) 이상 나갔다. 스님 입적 전에는 1만부가 나가는 데 석 달이 걸렸다. 그리하여 <무소유>는 1976년 4월15일 초판을 찍은 이후 지금까지 모두 340만부 이상 나갔다. 지금은 재고본 제로 상태. 고세규 문학의숲 대표는 “법정 스님 책은 보통 1쇄에 2만~4만부를 찍었다. 스님 신간이 나오면 10만 독자가 움직였다”며, 2008년 11월에 출간된 <아름다운 마무리>는 스님 입적 이후에만 25만부가 나갔다고 밝혔다.
법정 스님 책의 판매 상위 ‘독과점 현상’이 왜 이처럼 지속될까?
스님 입적을 계기로 불어닥친 스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물론 그 배경에 있다. 거기에 더 기름을 부은 것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들을 더는 출간하지 말아 달라는 스님 유언에 따라 곧 스님 책들을 시중에서 구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법정 스님 책 구하기 열풍’, 곧 폭발적인 추가수요다.
소유하지 말라는 스님의 가르침이 핵심 화두인 <무소유>가 이런 사정 때문에 소유 열풍에 휩싸인 건 참으로 역설적이다. 그러나 출판인들이 손꼽는 ‘법정 스님 붐’의 최대요인은 뭐니 해도 역시 책의 내용. 생각과 실제 삶이 일치한 스님이 던진 무소유, 침묵, 고요, 명상, 간소한 삶, 선택한 가난, 현대문명 비판, 좋은 책과 독서, 사랑 등 팍팍하고 불안한, 끝없는 소유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가장 절실한 화두들이 쉽고도 유려한 대중적 글쓰기에 격조 있게 녹아들어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법정 스님 붐’은 얼마나 지속될까. ‘스님 붐’은 계속되겠지만, 스님 책 붐은 올해 말까지로 한 고비를 넘기지 않을까. 스님이 주석했던 길상사의, 스님 저작권 관리를 맡고 있는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와 출판사들은 약 3주 전, 새로 찍는 스님 책은 각각 5만부로 한정하고 그것도 올해 말까지만 판매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스님 입적 전에 이미 찍어둔 책 재고본들은 그 계약 대상에서 제외돼 많이 찍어 둔 출판사들 재고본들 판매는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서점들에 대한 스님 책 공급을 올해 7월 말까지로 한정했기 때문에 그것도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세속의 계산에 따르면, 그래서 더욱 스님 책 수요가 폭발할 터인데,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고 가르친 스님이 여기 계시다면 이를 어찌 생각하실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