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도구가 되지 말자&’ 법정 스님 4주기 법회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경향신문 - 입력 : 2014-02-25 21:27:35ㅣ수정 : 2014-02-25 22:57:27
“주민등록번호 하나만 입력하니 내가 지금까지 외국을 드나든 기록이 빠짐없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섬뜩했습니다.”
2010년 입적한 &‘무소유&’ 법정 스님(1932∼2010·사진)의 육성이 4년 만에 다시 울려 퍼졌다. 25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 설법전에서 열린 법정 스님 4주기 추모법회의 풍경이다. 이날 법회 참석자 700명은 생전 촬영한 스님의 법문 영상을 시청하며 &‘문명의 소도구로 전락하지 말자&’는 고인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전자우편은 편합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금방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모든 일에는 뜸들일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래요. 진정한 관계는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고 세월을 통해 다져집니다.”
방영된 영상에서 법정 스님은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사람다움과 여유를 잃지 말 것을 강조했다. 그는 “순간순간에 감사하고 누릴 줄 알아야 한다”며 “순간을 수단시하고 살면 평생을 살아도 남는 게 없다. 목표를 좇아 급하게 달리지 말고 여유를 갖고 돌아갈 줄 알아야 한다”고 설법했다.
이날 법회에서는 법정 스님과 함께했던 다른 스님들이 고인과의 추억을 전했다. 송광사 법흥 스님은 “법정 스님은 성격이 치밀하고 시간을 소중히 여겼으며 자신의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다”며 “속가에서 읽은 책만 해도 한 트럭이 넘었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 맏상좌이자 문도 대표인 덕조 스님은 “스님은 꽃 피는 아름다운 봄날을 좋아하셨다”며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니 봄이 오는 거라 하셨다. 가시기 전날 눈이 많이 내려 매화를 보러 남쪽에 가시고 싶어 하셨는데 꽃향기를 좇아서 떠나신 것 같다”고 소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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