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법정스님 발자취따라 ‘무소유 길’ 만든다
1989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잡지사 샘터 사무실에서 법정 스님(왼쪽)과 수필가 피천득 씨(가운데), 동화작가 정채봉 씨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정 씨의 부인 김순희 씨(60)는 “이 자리가 법정 스님과 피 씨가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순천시
전남 순천시 송광사 주변에 법정 스님을 추모하는 ‘무소유의 길’(가칭)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순천시는 28일 법정 스님의 49재가 끝나면 송광사와 문화체육관광부에 이런 사업을 제안할 방침이라고 14일 밝혔다. 당초 순천시는 성철 스님 전시관(경남 산청군)이나 김수환 추기경 생가(경북 군위군) 같은 기념공간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의 ‘무소유’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따라 추모의 길을 조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순천시는 송광사가 동의하면 문화부에 관련 예산을 신청한 뒤 무소유의 길 조성 사업에 착수할 방침이다. 현재 송광사 측은 “49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추모의 길 사업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이르다”는 입장이지만 다음 달부터 순천시와 이 문제를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무소유의 길은 송광사∼불일암 2km, 송광사∼다비식장 2km, 송광사∼고동산∼낙안읍성 민속마을∼정채봉문학관 68km 등 총연장이 72km에 이른다. 불일암은 법정 스님이 17년간 머문 공간으로 현재 법정 스님의 유골이 안치돼 있다. 다비식장은 송광사 주차장 입구 야산에 자리 잡은 곳이다. 요즘도 법정 스님 추모객이 평일에 250여 명, 주말에는 1500여 명이 찾고 있다. 정채봉문학관은 송광사에서 직선거리로 50km 떨어진 순천시 대대동에 지어지고 있는 건물(연면적 139m²·약 42평)로 6월경 문을 연다. 순천 출신의 아동문학가로 동화 ‘오세암’을 쓴 정채봉 선생(1946∼2001)은 법정 스님과 23년 동안 교류했다.
안효상 순천시 문화체육과장은 “상업적 접근을 배제하고 법정 스님 정신을 후세 사람들이 배울 수 있도록 무소유의 길을 만들 계획”이라며 “오솔길 등은 그대로 둔 채 추모객 편의시설만 설치하는 방법으로 최대한 자연상태를 유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순천=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