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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 22-11-18

    [불교신문] 소설로 다시 만나는 법정스님 무소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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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다시 만나는 법정스님 무소유 삶

 

맑고 향기로운 사람 법정



법정스님의 일대기가 소설로 나왔다. 불교 전문 작가에 의해 출생부터 입적까지 무소유의 일생이 생동감있게 복원되고 있다. 특히 <불교신문>에서 1960년대 쓰여진 창작시가 다수 발굴된 것 중 4편을 단독 게재해 신선감을 더한다.

스님 일대기 근현대사 응축

“수행 고뇌 흔적 녹아있어”

1960년대 불교신문에 실린

‘다래헌 일기’ 등 창작詩도

“눈부신 하늘을/ 동화책으로 가리다/ 덩굴에서 꽃씨가 튀긴다/ 비틀거리는 해바라기/ 물든 잎에 취했는가/ 쥐가 쓸다만 맥고모처럼/ 고개를 들지 못한다/ 법당 쪽에서 은은한 요령 소리/ 맑은 날에/ 낙엽이 또 한잎 지고 있다/ 나무들은 내려다보리라/ 허공에 팔던 시선으로/ 엷어진 제 그림자를/ 창호에 번지는 찬 그늘/ 백자 과반에서 가을이 익는다.”

법정스님의 필력이 느껴지는 1969년 ‘다래헌 일기’는 이렇게 가을을 적었다. 소설은 그의 일생 흐름을 차곡차곡 기록해냈다. 그와 인연맺고 4고를 같이 나눴던 실제 인물이 등장하며 역사를 새로 현실에 올려놓았다. 경봉스님 탄허스님 장준하 함석헌. 근현대사에 역동성을 준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라서 진지함이 더해진다. “법정은 장준하를 처음 만나보고 지적인 사람이라고 느꼈다.” 한일국교 정상화 반대가 한창이던 1964년 동국대 강연을 마치고 나온 함석헌을 사상계 사무실에서 만난 장면도 있다. “장준하가 어색해하는 법정을 함석헌에게 소개했다.” 그들과의 만남에서 법정스님을 통한 역사는 재조명된다.

1972년 법정스님이 해인사 대장경판의 한글 번역도 실감나다. “외국 서적들의 사례를 뒤지며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었지만 다투기 일쑤였다. 2년간의 난고 끝에 드디어 책이 태어났다. …공동역자였지만 책에 이름자를 넣지 않았다. ‘팔만대장경을 새긴 사람들이 어디 자기 이름을 새겼던가?’ 법정의 말에 작업에 참여한 이들은 두 손을 들었다. 결국 저자 대신에 불교성찬위원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사진>소설 속에 현대사의 부침과 같이 해온 법정스님이 1997년 부처님오신날에 <평화신문, 평화방송> 초청으로 가톨릭 장익 주교(춘천교구장)와 대담을 나눴다. 평화신문 제공

시로 이는 다시 태어난다. 해인사의 수백년 묵은 전나무를 그린 1963년 시 ‘어떤 나무의 분노’. “보라/ 내 이 상처투성이의 얼굴을/ … /하잘 것 없는 이름 석 자/ 아무개/ 사람들은 그걸 내세우기에/ 이다지도 극성이지만/ 저 건너/ 팔만도 넘는 그 경판 어느 모서리엔들/ 그런 자취가 새겨져 있는가/ 지나간 당신들의 조상은/ 그처럼 겸손했거늘/ 그처럼 어질었거늘….” ‘무소유’는 여기서 이미 배아되고 있었다.

초기 수행의 치열함을 소상히 발굴한 흔적이 많다. 스승 효봉스님을 위시해 당대 큰 스님들로부터의 가르침을 받고 공부하면서 느낀 고뇌들이 잘 녹아있다. 간소하고 청빈한 수행자의 기본 골격을 답사하는 형식이 소설의 가치를 더해준다.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은 드라마틱하다. “아마 수덕사 대웅전이었을 것이다. 김 추기경이 갑자기 법당에 모신 부처님에게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대범한 법정도 깜짝 놀랐다. …‘어찌 추기경님이 법당 불상에 절을 하십니까?’ 그러자 추기경이 웃으며 대답했다. ‘스님은 친구의 아버지를 뭐라 부르지요?’ 법정은 그 자리에서 합장하며 화답했다. ‘추기경님은 진정 신이십니다.’ 두 거목의 대화는 한때 세인들의 가슴을 울렸다. 종교를 넘어선 사랑의 모습에 감동했던 것이다. 아니, 사랑의 모습을 몸소 보여준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렇게 핀 ‘연꽃’은 <평화신문> 초청 부처님오신날 특집 대담 장면에서 ‘인연법’으로 회향한다. “법정은 왜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 십자가를 지셨겠느냐, 그 고난에 의미가 있듯이 부처님도 중생을 위해 이 세상에 나오신 것이라 했고 그 또한 인연이라고 했다.”

저자는 삼성문학상 KBS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소설 탄허> <십우도> <탄드라> 등 장편소설을 냈다. 현재 <불교신문>에 장편 ‘불 속의 꽃으로 피다’를 연재중이다.

김종찬 기자 kimjc00@ibulgyo.com

[불교신문 2619호/ 5월1일자]

2010-05-05 오후 1:12:42 /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