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유언 받들어 10년간 수행 매진”<세계일보>
법정 스님의 맏상좌 덕조 스님
지난 3월 입적한 법정 스님의 49재가 지났지만, 스님에 대한 간절함은 여전하다. 불자는 물론 일반인도 스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의 자취를 찾아나선다. 스님이 20년 가까이 기거했던 불일암에도 속세의 사람들이 넘쳤다. 마침 초파일도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법정 스님은 이곳을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곳&’으로 여겼다. 그래서 불일암도 수류화개실(水流花開室)로 불렀다.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법정 스님이 불일암에 터를 잡은 것은 1975년 4월 19일이었다.
그때부터 스님은 허물어진 불일암 곳곳을 직접 만지고 다듬어 오늘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 정확히 35년 전에 시작한 일이다. 직접 심었던 후박나무 아래에 잠든 스님은 지금 불일암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불일암은 맏상좌인 덕조 스님이 법정 스님과 인연을 맺었던 곳이기도 하다. 법정 스님이 떠나고 난 뒤, 길상사에서 내려온 덕조 스님은 평온해 보였다. 덕조 스님은 이곳에서 적어도 10년 동안 법정 스님의 가르침과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스님이 유언에서 &‘덕조는 맏상좌로서 결제 중에는 제방선원에서, 해제 중에는 불일암에서 10년간 오로지 수행에만 매진한 후 사제들을 잘 이끌어주길 바란다&’고 했던 말씀을 따라야지요.”
2009년까지 10년 가까이 서울의 길상사에서 주지로 지냈지만 덕조 스님에게 불일암의 의미는 각별하다. 법정 스님의 제자로서 길상사보다는 송광사가, 송광사보다는 불일암이 스승의 뜻을 받들고 이어가기에 적절해서다. 그런 점에서 덕조 스님은 이곳에서 평생 수행할지도 모른다.
스승이 떠난 뒤 허전할 만도 한데 덕조 스님이 차분히 법정 스님과 인연을 설명했다. 송광사에서 행자로 시봉하고 있던 덕조 스님은 불일암까지 우편배달 심부름을 했다. 행자끼리 순서를 정해 3개월씩 하던 일인데, 그 일을 마친 뒤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존경받는 어른 스님이었지만, 깐깐했던 법정 스님이었기에 걱정은 됐다. 그런데 “스님께서 더 머물러라”고 했다. 그때부터 1년 6개월 스님을 모셨다.
다른 절과 달리, 상좌가 스승을 선택하는 송광사의 전통에 따라 1년 6개월 뒤 그는 법정 스님을 스승으로 선택했다. 법정 스님이 거부하면 또다시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법정 스님은 제자를 두지 않는 분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힘든 결정이었다. 법정 스님은 “제자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송광사의 행자들이 처음에 믿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부처님의 나이보다 젊을 때 제자를 둘 수 없었다&’던 법정 스님이 처음으로 제자를 받아들여서였다. 법정 스님에게서 그 뒤 법명까지 받았다. &‘덕을 가지라&’는 뜻을 토대로 &‘덕조(德祖)&’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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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가 내린 불일암에는 법정 스님의 뜻을 받들고 있는 덕조 스님의 노력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후박나무 아래 법정 스님의 유골이 묻힌 땅에 보호용 대나무를 설치한 이도 덕조 스님이다. |
상좌가 된 때는 1983년이었다. 자신을 상좌로 받아들인 법정 스님의 말씀을 덕조 스님은 지금도 기억한다. “내게 계를 주신 효봉 스님과 시주들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다.” 제자를 좀체 두지 않았던 법정 스님의 상좌는 모두 일곱 명이다. 법정 스님의 상좌들은 1년에 두 차례 불일암에 모여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긴다.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을까. 그는 “선사나 스승의 가르침대로 행하면 된다”고 여긴다. 법정 스님이 남긴 책에 대한 출판 논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은데, 세상은 여러 뜻으로 해석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출판계 어른인 윤형두 범우사 회장님이 고맙지요. 법정 스님의 정신을 아끼신 분답게 선뜻 그 뜻을 따랐으니까요. 이제 잘 정리돼서 많은 분들께 고맙기도 합니다.”
속인들이 관심 갖는 일에 대해서도 말씀을 부탁드렸다. “젊은 사람들은 좀 더 진보적이고 개혁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와 다른 이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올곧은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생각이 막혔다는 것은 발전이 없다는 것이거든요.”
불일암(순천)=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 기사입력 2010.05.06 (목) 22:11, 최종수정 2010.05.19 (수) 1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