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향기롭게 후원하기

언론

    • 22-11-18

    [연합뉴스] <연합시론>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을 다시 생각한다

본문

(서울=연합뉴스) 한국사회의 정신적 사표였던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기일을 차례로 맞는 감회가 새삼 깊다. 천주교계는 16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추모미사를 비롯해 다채로운 행사를 가짐으로써 고인이 남긴 사랑과 봉사, 헌신의 뜻을 다시한번 새겼다. 불교계도 하루 뒤인 17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생전 스님의 유지에 따라 추모재를 조촐하게 개최하고 스님이 평생동안 실천한 무소유의 삶을 기렸다. 두 분의 삶은 종교계를 뛰어넘어 한국사회 전반에 커다란 가르침을 안겨주었으며 지금도 생사와 시대를 초월해 강한 울림을 던져주고 있다. 세상이 탐욕과 소유에 사로잡혀 찌들수록 두 종교지도자가 그리워짐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2009년에 선종(善終)한 김 추기경은 사회정의와 봉사, 나눔을 생애 내내 실천하며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온 몸으로 일러준 정신적 큰기둥이었다. 천주교라는 교단을 초월해 모두의 사제이자 친구였던 것이다. 김 추기경은 '바보'라는 별칭이 오히려 친근하고 소탈하게 다가오는 삶을 온전히 살아냈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사회민주화를 추상같이 요구했으며, 어둠과 부패로 고통받는 세상을 향해서는 빛과 소금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선종을 앞두고는 각막기증 의사를 밝힘으로써 '나눔 정신'을 실천해 이후 장기기증운동에 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는 지금도 큰 반향을 일으키며 우리를 용서와 화해와 사랑으로 인도하고 있다.


2010년에 입적(入寂)한 법정 스님은 평생동안 '무소유'를 화두로 붙잡고 비움과 자비행의 길을 오롯이 걸어갔다. 욕심을 버리고 또 버림으로써 내면의 충만함을 추구하라는 법문은 불자는 물론 속세인들에게도 뭉클한 감동을 안겼다. 스님은 또 잔잔한 필치로 삶과 자연을 그려나간 당대의 수필가로서 모든 이들의 친숙한 스승이자 벗이기도 했다. 무소유의 삶은 세상 여행을 마치는 그날까지 일관되게 이어졌다. 사리도 수습하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며, 평소 입은 승복 상태 그대로 다비해달라는 마지막 유언은 칼처럼 차갑고 단호한 자유인의 결기를 단적으로 웅변해준다. 탐욕과 소유에 혈안이 된 속세인들이 그 정신을 반의 반만이라도 이어받는다면 세상은 자비로 넘쳐 한결 맑고 밝아지리라 믿는다.


김 추기경과 법정 스님은 종교 울타리를 훌쩍 넘어 가까운 벗으로서 깊이 교유했다. 김 추기경이 길상사를 찾아 축사를 하고, 법정 스님이 명동성당에서 설법함으로써 상호존중과 화합, 상생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었다. 법정 스님이 &quot;예수님의 탄생은 한 생명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낡은 것으로부터 벗어남&quot;이라며 &quot;우리가 당면한 시련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롭게 움터야 한다&quot;고 한 대목은 미망 속에 허둥거리는 개인과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질과 이익, 성장과 효율을 좇아 맹돌진해온 우리 사회는 지금 내적 빈곤과 불안, 상호 갈등과 대립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두 분이 남긴 사랑과 봉사, 무소유와 비움의 정신을 무겁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


&lt;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gt;2012/02/17 14:48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