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법당엔 부처님보다 불전함 먼저 보여”
1964년 기고 ‘부처님 전상서’ 날선 비판 반향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
“부처님! 당신의 거룩한 상이 모셔진 법당에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이 자비하신 당신의 ‘이미지’가 아니라, 입을 딱 벌린 채 버티고 있는 ‘불전함’이라는 괴물입니다. 이 괴물이 있는 곳은 바로 당신의 코앞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나 산중에 있는 절간을 가릴 것 없이 그것은 근래 사찰의 무슨 악세사리처럼 굳어져 버렸습니다….”
‘무소유’와 ‘아름다운 마무리’로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최근 입적한 법정(사진) 스님이 1964년 10월 조계종 기관지‘불교신문’의 전신인 ‘대한불교’에 세차례 연속 기고한 ‘부처님 전 상서(前 上書)’의 한 구절이다. 비구·대처 사이의 분규를 거쳐 1962년 통합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한 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30대의 젊은 스님이 ‘한국 불교가 썩어가는 모습을 도저히 볼 수 없다’며 쓴 글이 최근 불교계에 퍼지면서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법정 스님이 승가의 전 근대성과 폐쇄성, 사이비 승려를 거론하며 돈과 감투를 탐내는 이들을 질타하며 안타까워한 불교계의 모습이 46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깊은 산에 수목처럼 덤덤히 서서 한 세상 없는 듯이 살려고 했는데, 당신(부처님)에게라도 목소리 하지 않으면 배겨낼 수가 없다”며 글을 시작한 뒤, 청정 승가의 모습을 잃고 급격하게 세속화되어 가고 있는 당시 승가에 “그러려고 출가했느냐”며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특히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얻어 걸린 높은 벼슬인 벽(벼락)감투란 말이 있고, 그것이 세속에서는 다섯 가지 욕망 중에 하나라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며 “세속을 여의었다는 당신의 제자들은 마치 그런 감투나 뒤집어쓰기 위해 이 문안에 들어온 것처럼 그 ‘높은 자리’에 앉아 버티기를 좋아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법정 스님의 글에는 ‘무소유’와 ‘아름다운 마무리’로 세상을 감동시킨 스님 입적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봉은사 직영사찰 문제가 불거졌음인지 이를 빗댄 댓글도 달리고 있다. ‘취모검’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는 “스님이 글을 쓰던 1964년보다 현재의 불교계가 훨씬 더 썩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고 아이디‘출가사문’은 “한없이 고개 숙인다”고 적었다.
한편 정치권의 외압 등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봉은사 문제는 총무원측과 봉은사측이 토론을 하자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 일단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